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연과학은 현상을 법칙화한다. 이것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는 현상을 고정된 불변적 질서 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것이 어디까지 가능한 작업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자연과학과 수학적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슷한 물음이 가능하다. 근대적 자연과학은 자연을 탐구하고 기술하되 반드시 수학적 언어로 자연법칙을 기술한다. 하지만 수학은 원칙적으로 사실학문이 아니라 순수사유의 학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수사유의 학문인 수학이 현실의 진리를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겠는가?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학이 단순히 자연법칙을 표현하고 기술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학은 과학적 탐구와 발견의 없어서는 안될 주체인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이 수학적으로 탐구되고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이 그 자체로서 수학적이라는 것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수학이 대변하는 순수 사유의 진리와 현실적 자연의 진리가 공속한다는 말인가? 다시 말해 사유의 진리와 존재의 진리가 그 본질에서는 하나라는 말인가? 이 책의 미덕은 우리를 철학과 과학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런 심각한 물음 앞에 마주서게 한다는 데 있다. 지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형이상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발생하는 이런 철학적 물음은 현대 자연과학의 등장과 함께 더욱 첨예화된다. 그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현대 과학이 다루는 대상이 더이상 고전 물리학이 다루었던 직관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과학이 다루었던 대상들 역시 모두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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